전화기는 오늘날 통신수단에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통신은 전기공학에서도 배우게되는 한 분야인데요.
오늘은 이 전화기의 역사와 우리나라 전화기술의 시작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화기의 발명
전화기는 잘 알려졌다시피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 의해 발명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통신수단은 있었는데요, 이전까지는 한 번에 한개의 메세지를 보낼 수 있는 전신기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한 번에 보내는 글자의 한계를 느끼고 목소리를 통신할 방법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이당시 벨의 집안은 농아를 돕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농아에게 발성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던 과정에서 발명된 것이 바로 전화기입니다.
1800년대에 들어서 과학자들은 쇠나 철 등의 진동이 전기적 충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는 곧 소리가 전신선을 따라 전달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를 상업화 시켜 전화 통신의 시대를 연것이 그레이엄 벨이었습니다.
최초의 전화기는 전화선이 전화기 끼리 개별 연결이 되어있는 형태였는데요, 점차 전화기가 보급될 수록 전화선이 얽힐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후에 교환대라는 것이 설립되면서 전화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군대에 다녀오신분들 특히 통신병과에 다녀 오신분들은 교환병이 교환대에서 근무하는 것을 잘 아실텐데요, 이 교환업무의 전신이 1870년대에 들어선 것입니다.
참고로 전화를 뜻하는 이름은 멀리있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전한다하여 전화기는 멀리의 뜻을가진 'tele'와 소리를 의미하는 'phone'을 합쳐 telephone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전화기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의 이름은 '덕률풍'입니다. 텔레폰을 소리대로 한자로 옮긴 발음이 덕률풍이어서 덕률풍으로 불리었습니다.
덕률풍은 1896년 덕수궁에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가 되었습니다.
이 덕률풍을 이용한 우리나라 전화기의 최초의 사용자는 고종 황제였는데요, 고종이 인천으로 전화하여 백범 김구의 사형 집행을 정지시키도록 명한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통화 기록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전화
우리나라 민간 통신용 전화기는 1902년 '한성전화소'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평양,수원, 마포, 시흥, 남대문 등 총 9곳에 공중전화소가 설치 되었습니다.
당시의 통화방법은 지금의 직접 연결이 아닌 전화를 건사람-교환원-상대방연결 방식이었습니다.
때문에 교환원이 전화내용을 듣고 통화를 중단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민간 전화소는 서울-인천 간 전화가 가능했는데 서울-인천간 통화가 5분에 50전 오늘날 약 35만원에 가치였다고 하니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또한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우리나라 통신사업에 의해 일본의 지배로 넘어가고, 전쟁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의 통신 사업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게 되는 아픈 역사를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화기의 발명과 우리나라 전화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현대사회는 휴대폰 사용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인데요, 문득 궁금해진 통신수단의 시작과 역사, 통신 방식에 대하여 알아보니 흥미가 생기지 않으시나요?
다음 포스팅에서도 흥미로운 주제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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